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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토피아"가 전하는 메세지와 해석 [스포주의]

마늘감바스 2024. 10. 9. 16:55


영화 주토피아는 주인공인 주디가 도시의 숨겨진 음모를 밝혀내는 어쩌면 뻔한 이야기이지만 
주토피아 속의 여러 캐릭터와 서사 방식은 관객들에게 선명한 메세지를 보내고 있다.

주토피아가 전하는 메세지 '우리는 편견 없이 바라보고 있는가'


영화의 세계관을 설명해 주는 어린이 연극 속 내용을 보면 동물들은 더 이상 '야만적'이지 않기 때문에 본능대로 살지 않으며 
표범은 학자가 되고, 양은 우주비행사가 되고, 토끼는 경찰이 되길 꿈꾼다.
이렇듯 영화는 시작부터 우리가 동물에게 가지고 있던 편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영화가 진행되며 등장하는 수많은 등장인물들 또한, 편견을 강화하거나 편견을 깨는 역할들로 등장한다.
최초의 토끼 경찰이자 다들 불신하는 여우를 도와주려는 주디는 편견을 극복하려는 주인공으로,
어릴 때 받은 상처로 '여우답게' 살기로 한 은 편견을 받아들이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 이후에도, 귀여운 외모의 사막여우는 사실 걸걸한 목소리의 갱스터로 나오며,
동물이 옷을 입는 게 편견인지 벗는 게 편견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자연주의 클럽과
'플래시'라는 이름을 가진 차량관리국 직원인 나무늘보,
북극곰들의 보스는 아주 작은 '땃쥐' 등
동물의 외형이나 특징에 의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강화하거나 비트는 전개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중간 클라이맥스에서 '육식 동물의 DNA가 원인일 수 있다'는 주디의 말과 함께, 사나워진 모든 동물이 육식 동물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관객들에게도 '육식동물 = 위험한 동물이 맞다'는 생각을 유도한다.

이는 관객뿐만 아니라 '여우 꺼져 스프레이'로 대표되는 주디의 내면 속 편견을 부각시키는 장면으로, 이 가진 트라우마를 건드리며 둘의 사이가 멀어지게 만든다.

흥분하며 이빨을 드러낸 을 보는 주디 입장에서는 충분히 경계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자신을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생각했던 주디가 여전히 자신을 이 아닌 '여우'로 보는 듯한 행동은 에게 큰 상처였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편견근거가 생기자 혐오는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는 당당한 주장이 되었고 주토피아에는 끊임없는 갈등이 생겨났다.

육식동물의 격리를 주장하고, 지하철에서도 호랑이에게서 멀리 떨어져 앉으며, 절대 다수인 소형 초식동물이 도시를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없이 말한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면 '토끼도 야수가 될 수 있다'는 주디의 말대로 모든 것은 편견을 이용한 음모였으며, 진짜 흑막은 순진하게 보였던 양이었음이 밝혀진다. 
주디를 공격하는 연기를 하며 양을 함정에 빠트리는 장면은 이전과 달리 주디가 편견에서 벗어나 을 무서워하지 않고 완전히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마저 광란의 폭주족이 알고 보니 나무늘보 플래시로 밝혀지며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관객의 생각이
'플래시'라는 이름을 가졌으니 빠른 동물일 것이다 -> 나무늘보니까 느릴 것이다 -> 알고 보니 폭주족이었다 로 변화하며
편견에 편견을 깨는 모습으로 끝난다.


영화 주토피아는 특징이 분명한 동물들을 등장인물로 삼으면서 이들조차도 편견으로 바라보면 안 되는 이유와, 편견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을 설명한다.
현실과 주토피아를 비교하며 바라보면 우리의 편견과 차별이 얼마나 강한지 깨닫게 된다.
인종으로, 성별로, 나이로, 사상으로, 우리는 타인을 편견으로 바라보고 있다. 상대에게 뿔이 달렸다거나 몸집이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거나 초능력을 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우리는 영화의 도입부에 나왔던 주토피아의 설명처럼 '야만적'이지 않은 평등 사회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은 정말 '야만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권력을 잡기 위해 편견을 이용한 양과 같은 인물들을, 우리는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근거를 맹신하며 혐오를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들 또한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편견에 저항한 주인공들 덕분에 주토피아는 진정한 동물들의(zoo) 유토피아가 된 것처럼 주토피아를 보고 느낀 많은 사람들이 편견과 혐오에 저항하기를 바란다.